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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현안 모음

대전산내민간인학살 사건을 아시나요?

by goldcham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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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산내 민간인학살 사건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대전형무소에 수감자 등의 사상범들을 우리 군인과 경찰이 대전 동구 산내 곤룡골로 이송 후 집단 학살하고 암매장한 사건을 말한다. 대전 산내 곤룡골에서 집단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수는 미국립 문서보관소나 당시 종군기자 보도, 각종 증언 등을 종합해 보면 적게는 4천 명에서 많게는 7천 명에 이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대전 산내 곤룡골의 집단 학살은 6월 28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 3일동안은 보도연맹 및 예비 검색자 관련자로 1,400명이 대상이었으며, 7월 첫째 주부터는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여수, 순천 관련 정치범 등으로 1,800명(미국립 문서보관소), 7월 16일까지는 기타 지역에서 이송된 민간인들로 많게는 3,700명이 그 대상이다.

당시 대전형무소 특별경비대 부대장이었던 이준영씨와 충청남도 경찰국 사찰 주임이었던 변홍명씨 등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7월 4일경부터 헌병대에 의해 성향 분류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곧바로 산내 곤룡골로 이송되어 집단학살되었다고 한다. 

이후 군·경이 후퇴를 시작한 7월 14~16일 막판까지도 타 지역의 보도연맹원 등에 대한 산내 곤룡골에서의 학살은 계속되었으며, 최소한 10여일 동안 이들에 대한 집단학살은 밤낮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집단학살 현장에는 군 헌병대를 비롯 미군과 사회유지들도 참관했다고 한다.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은 지난 2000년 1월부터 몇몇 분들의 노력으로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되었으며, 첫 위령제는 지난 2000년 유족 모임이 결성된 후 유가족 주관으로 첫 번째 위령 행사를 대전 산내 곤룡골에서 가졌다. 이후 매년 6월이 되면 유가족과 대전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7년 7월 1일 국가 차원의 유해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두차례에 걸쳐서 일부분에 대한 발굴작업을 통해 유해 52구를 확인하고 수습한 바 있다. 이후 2010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군인과 경찰에 의한 집단 학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히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일(27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70주기 대전산내 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대전 동구 산내 곤룡골 임시 추모공원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소수 유족분들이 참석하여 위령제를 개최하고 온라인으로 중계할 예정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필자는 대전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유족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2000년 초부터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과 유족회를 결성하고 첫 위령제를 개최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이 자행된지 70주년, 매년 위령제를 개최해온지도 20년을 넘기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은커녕 유해발굴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는 사실조차 대부분의 대전시민들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6년, 정부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 전국 최대규모의 평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이마저도 4년이나 지나고 있지만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평화공원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유족들이 요구했던 전시관, 추모관 설립이 추가되고, 국제공모를 통해 평화공원 설계가 마무리되면 빠르면 2024년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될 전망이다.

대전 산내 평화공원이 조성 된다면 한국전쟁 당시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되신 분들을 추모하는 공간이자 화해와 상생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우리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낸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전쟁 이후 세대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체험하는 쉼터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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