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 어서 오십시오. 청취자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산내 학살 사건’ 피해 유가족들을 위한 ‘산내유족회’ 발족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려고 하는데 언제부터 관심갖게 되셨어요?
금홍섭 / 1987년도 6.10민주항쟁을 계기로 우리사회가 여러분야에서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그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었던 과거사 문제가 일부 진보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우연히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산내 골령골에서 우리 군과 경찰에 의해 수천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을 조명한 기사를 보았고,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1999년도 쯤 대전산내 민간인 학살 관련 몇분의 유족분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민간인 학살지였던 골령골에 다녀오고, 더 많은 유족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진상규명운동을 본격적으로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 / 유족회 발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당시에 있었습니까?
금홍섭 /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대전시민들은 대전산내 골령골에서 1950년도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았습니다. 2000년도 첫 위령제를 개최하고, 학살지터가 방치되면서 훼손이 심각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지역민들의 관심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에는 해당지역의 동구청이나 대전광역시에서도,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현장 보전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이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2천년대 중반이후 과거사 특별법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지역사회의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 / 유족들이 직접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을 찾아 유족회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던데, 당시 시민연대 안에 유족회 사무실이 있었죠?
금홍섭 / 네 그랬지요. 처음엔 유족이 그렇게 많지 않으셨어요. 그랬던 배경에는 1950년도 산내 골령골에서 군인 및 경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이 대부분이 300명이 좀 넘는 제주도 4.3항쟁 관련자를 비롯 전국에서 이송되어 오셨던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현재 대전지역에 거주하시는 유족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유족분들이 저희를 찾아오셔서 의지하다시피 하셨고, 더욱더 열성적으로 매년 위령제를 비롯 진상규명 활동과 특별법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자주 뵈었기에 그분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지요.
아나운서 / 초창기 기억나는 일들 있으십니까?
금홍섭 / 전쟁의 상처는 워낙 컸기에 유족분들 처음 뵈었을 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족분들 한분한분을 통해 간절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필리핀 속담에 ‘하고자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기싫은 사람은 핑계부터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평화의 공원이니 하는 엄청난 것을 바라는것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또는 자식, 친지들의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몰랐던 유족끼리도 금방 가족처럼 친해지고, 그런 힘들이 매년 7월이되면 전국에서 유족분들이 모여들어 위령제를 개최할 수 있었고, 지금에 이른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나운서 / 당시 위령제 등을 통해 진실규명에 많은 힘을 쏟으신 것으로 아는데, 이런 노력들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등애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평가하세요?
상당히 기여했다고 생각됩니다. 대전산내 민간인학살 관련 소식을 접한 것은 1999년도부터이지만, 본격적인 유족찾기에 나선 것은 2000년 1월 7일 <피해자, 증언자 신고센터>를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는데요. 그리고, 유족분들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대전산내학살사건 진상대책모임>을 곧바로 구성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각종 활동과 함께 진실화해위원회 구성 및 특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었는데요. 성과를 내기까지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렸는데요. 가능했던 힘은 결국 유족분들이었습니다.
아나운서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통해 많은 유족들이 진실을 규명 받고 보상도 받으셨는데, 시작할 때만 해도 억울한 사연들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십니까?
안타까운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유족분들은 숨죽이며 살아오셨더라구요. 연좌제에 묶여 능력이 있어도 공공기관으로 취직도 못하고, 대부분 살아오신 이력이 자영업 등 혼자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해 오셨더라구요.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부모님 또는 자식과 친지 가족을 억울하게 잃고도, 엄혹했던 사회분위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대전산내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못하시면서, 저희들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흘르면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낼 때 가슴이 뜨거웠던 감정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나운서 / 당시 유족회 활동을 지켜보시면서, 아쉬웠던 부분, 좀 더 잘 해결됐으면 하고 바라셨던 부분 있으셨나요?
현재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당시 민간인 학살자 규모가 3천에서 많게는 7천명까지 거론되는데요. 한국전쟁 당시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셨던 분들이 대부분 제주도를 비롯 전국에서 이송되어 오셨던 분들이 많았고, 한국전쟁 이후 군인,경찰 등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 되다보니까, 관련유족임에도 불구하고 나서지 못하신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저희들이 좀 더 열심히 진상규명을 알리는 활동을 했었더라면, 더 빨리 성과도 내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평화공원 조성도 좀더 빨리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큼니다.
아나운서 / 이후 유족회 활동 쭉 지켜보고 계셨습니까?
최근에는 체계적인 교류는 없었으나,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지요. 몇 년전부터는 독자적인 사무실도 마련하여 체계적인 활동도 하고 계시고, 전국의 200여곳의 비슷한 처지의 한국전쟁당시 민간인 학살지역의 유족들과 연대하고 교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 뿌듯한 마음도 들고, 여전히 힘을 함께 보테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생각 뿐입니다.
아나운서 / 올해가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데요.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세대는 벌써 고령이 되어 과거의 진실들이 묻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금홍섭 / 더 이상 산내민간인 학살사건 관련 진실규명 책임을 유족분들에게 넘길수 만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사회가, 국가가 책임지고 산내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아직도 유골이 산내 골령골에 그대로 묻혀있고, 많은곳이 훼손된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관련법을 제정한 만큼 신속하게 공원화 사업을 통해 유족분들의 한을 풀어주었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관련법에 근거하여 평화공원을 만들어서, 전국에 흩어져 계신 유족분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역사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나운서 / 산내 골령골에는 한국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평화의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초기 활동을 함께 했던 분으로써 바라시는 점 있으세요?
금홍섭 / 과거 부끄러웠던 우리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공간이자, 또 배우는 공간이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미래사회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배워서 남주는 것처럼, 대전산내 골령골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터에 만들어지는 평화의 공원이 잘못된 역사와 아픔을 기억하고, 배우고, 그 의미를 다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대전시민들과 우리 국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평화와 인권이 공유되는 플렛폼이 되는 공간이기를 기대합니다.
아나운서 / 개인적으로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경험하신 세대이신가요? ‘한국전쟁’의 기억이 우리 사회에 어떤 과제를 남겼다고 보십니까?
금홍섭 / 저도 전후 세대이다보니, 당연히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학교에서 또는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만 알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또다시 한국전쟁과 같은 참혹한 상황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력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도 키워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로 고통받는 분들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더 나아가, 평화공원을 통해 만들어진 화훼와 평화 분위기가,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해 봅니다.
대전산내민간인학살 인터뷰(대전CBS 20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