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정치혁신, 정치개혁은 이 시대의 주된 화두다. 그동안 기성 정치권은 정치혁신의 목소리에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다. 국민의 거센 정치쇄신 요구는 정당정치의 무능력과 이에 따른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에서 출발하며, 새로운 정치 또는 새로운 정당정치로의 변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새로운 정치, 정치혁신은 더 이상 지체할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응성의 높은 정치'는 올바른 해법 제시 보다는 오히려 효율성만을 앞세운 ‘정치의 축소’와 ‘그들만의 기득권 강화’라는 왜곡된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는게 최근의 현실이다. 국회의원 정수축소, 지구당 폐지, 공천권 폐지, 국민참여 제약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판단된다. 아울러, 지난 20년간의 지방자치 속의 우리나라 정치를 평가했을 때, 중앙정치는 부풀려져 있는반면 지방정치는 아예 실종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여야, 진보정당을 막론한 이런 현실은 지역의 시민정치 활성화와 정치혁신을 위한 지역정치 활성화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당, 풀뿌리 정당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정치혁신은 국회가 아닌 풀뿌리에서 찾아야
정치와 행정은 같을까? 다를까? 물론, 다르다. 개념상으로도 엄연히 다르고 중앙(서울)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20년간 해오고 있는 필자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정치’와 ‘행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
지역에서의 정치는 9시 뉴스에서, 지역의 굵직굵직한 행사장에서, 지방의원들 사고쳤을때나 찾아볼 수 있는게 현실이다. 주로 선거가 없을 때 정치행위는 시민단체와 자당소속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에게 맡겨놓고 조용히 불구경 하다가 선거때만 되면 요란법석을 떠는게 현재의 지방정치의 현주소다.
일예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행정(정치)에 대해서는 서울의 참여연대 상근 간부보다도 지역의 시민단체 간사가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다. 참여연대 상근간부 조차도 정치를 생활 근거지 보다도 청와대와 국회에서만 찾고 있는 마당에 오늘 우리가 논의하려는 지구당과 풀뿌리 정당, 지역정당 논의 조차도 동네나 지역에 근거하지 않고 국회에서나 찾지는 않을지 하는 회의감이 든다.
그런점에서, 정치혁신을 위한 지구당과 풀뿌리 정당, 지역정당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도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지역(동네)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바라보고, 접근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지역정치 혁신방안 중심으로 논의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필자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면, 중앙정치(정당간) 수준은 미묘한 변별력이 있어 보이나, 지역정치(정당간)의 수준은 그 미묘한 변별력 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앙정치에 모든 지역정치가 예속되고 줄세우기 된 상황에서 지역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개혁 등의 노력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지역개발, 지역경제라는 미명하에 여야를 막론 한목소리로 지역지배세력에 영합하고 있으며, 최소한 지역민들의 삶의 질과 밀착된 차별화된 지역현안에 대한 목소리는 부재한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보루인 진보정당 마저도 시민의 삶의 질과 밀접한 일상적인 지역정치 현안에 대한 관심 보다는 중앙정치 현안에 치중된 정치역량 및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마저도 지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어쩌면 오늘 주로 논의하려는 지구당, 지역당, 생활정당에 대한 논의도 중앙의 논리, 국회(중앙정치)의 논리, 서울의 논리로 접근할까봐 걱정된다.
따라서, 필자가 보기엔 정치혁신은 지역정치의 정책역량을 대폭 강화하고, 풀뿌리 정치의 활성화를 통해 국민적 분노와 공감대가 확산될 때 가능하다. 지역중심의 풀뿌리 정치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각종 지역 현안에 대한 보다 차별화되고 책임성 있는 정치역량, 정책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 속에서 지역정치의 인물을 발굴 육성하고 그들을 정치혁신의 전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닭이 먼져나, 계란이 먼저냐의 논쟁이 아니라, 손발없는 상부구조에서의 논의 보다는 그들만의 블록을 타파하기 위해 지역에서, 현장에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역량과 자원을 만들어가면서 정치혁신을 견인해 나가자는 말이다.
세 번째, 지역정치의 구심점(?) 지구당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대선에서 모 후보는 정치혁신의 방향으로 지역구를 축소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정치불신이 팽배해져 있다고해서 지역구를 축소하면 정치가 달라질까? 지역구 문제는 지역의 정치역량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역구 축소 또는 폐지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차라리 중앙당을 해체하자는 구호가 더 피부에 와닿는 방법이지 않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지역정치의 실종에는 지구당의 역할 부제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광역단위별 시·도당의 역할부재와 무능은 지역정치를 스스로 블럭화 시키고 있으며, 오히려 지역 풀뿌리 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본인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인식에는 중앙정치 의제에만 매몰되어 있는 진보정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역정치의 구심점인 지역의 시·도당이 왜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중앙정치의 들러리 역할만 하도록 강요하고 방치한 중앙당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소한의 정책역량과 활동역량을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선거 국면 이외에는 줄세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손발 없는 시·도당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당의 정무기능은 대폭 줄이고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 시·도당의 무게감은 더욱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앙정당의 정책역량 이외의 정무기능은 가급적 축소하고, 각 시·도당의 정책역량과 권한(공천권 등)은 대폭 확대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일상적인 현안에 대한 정치 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끝내며…>
우리나라의 정당체제는 분단과 자본의 굴레 속에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 균열축인 계급, 계층구조와 갈등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면서, 계급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은 미약한 반면, 지역에 기반의 보수 양당체제가 오랜 기간 고착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착화된 양당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와 혁신, 분노의 게이지는 높으나, 막상 주어진 기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도는 매우 보수적이거나 자포자기하는 무반응성을 띠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정치혁신은 유권자의 정치 혐오를 불식시키고, 제대로 된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통해 가능하며, 중앙정치 일변도가 아닌 지역정치가 보편화되고 수평화될 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관점에서 보면, 지역구를 축소하고 정당공천제와 지구당 폐지와 같은 지역정치 축소만이 능사가 아니라, 책임정치의 복원과 지역정치의 균형 회복에서 문제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중앙정치(수직) 중심의 한국정치를 수평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중앙정치를 정점으로 하는 줄세우기 문제를 해소하고, 공천과정 혁신과 중앙당 중심의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지역대표 방식으로 해결하는 속에서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된 정당정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지역의 지배세력과 결탁한 그놈이 그놈인 정치가 대중의 정치불신을 보편화 시켰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지역정치를 복원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중앙정치의 반성과 양보가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