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숫자로 말한다. 특히 예산은 시정(市政)의 철학과 방향, 그리고 시민의 삶에 대한 관심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이 글에서는 민선 7기 허태정 시장과 민선 8기 이장우 시장의 대전광역시 본 예산을 비교 분석하며, 그 속에 담긴 대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찰해보고자 한다. 혹자는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할지 모르나, 그 숫자들 속에는 우리의 도시, 대전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선7기 허태정 시장의 ‘과학도시, 소상공인’ DNA가 새겨진 예산
허태정 시장 재임 당시인 민선 7기의 예산 편성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고유한 특성을 명확히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핵심은 바로 ‘과학도시’와 ‘소상공인’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있었다.
데이터는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2022년도 예산에서 대전의 산업·중소기업 분야 예산은 3,996억 원으로, 광주보다 1,513억 원이나 많았다. 또한, 과학기술 분야 예산 역시 805억 원으로 광주보다 714억 원 더 많이 편성되어 대전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이는 대덕특구라는 독보적인 자산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발전과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소상공인 보호 및 육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문화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광주에 비해 대전의 문화 및 관광 분야 예산은 1,500억 원 이상 적게 편성되었는데, 이는 각 도시의 특성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산은 단순한 지출 계획이 아니라, 도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도 같은 것이다. 허태정 시장의 예산은 대전의 본질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선8기 이장우 시장의 ‘전임시장 색깔 지우기’와 ‘공약 올인’ 예산
민선 8기 이장우 시장의 예산 편성에서는 전임 시장의 색깔을 지우고, 이장우 시장의 정책 방향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산업·중소기업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이다. 산업·중소기업 분야는 2022년 3,996억 원에서 2023년 2,674억 원으로 1,322억 원이나 감소했으며, 이는 광주(2,957억 원)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특히,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지역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시 예산을 증액 편성한 광주의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대조적이다. 과학기술 분야 역시 2022년 805억 원에서 2023년 646억 원으로 159억 원 감액 편성되었다.
그렇다면 삭감된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그 빈자리는 ‘0시 축제’와 같은 이장우 시장의 공약 사업, 그리고 토목 건설 등의 예산으로 채워졌다. 2024년도에는 총 71건의 공약 사업에 1,900억 원이 우선 배정되었고, 0시 축제 관련 예산은 2024년 62억 원이 집행되었으며 2025년에는 대전 전역으로 확대 추진될 계획이어서 관련 예산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예산 편성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정치적 의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 나아가 이장우 시장은 전임 시장의 정책적 유산을 지우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온통대전,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관련 육성 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되거나 폐지되었고, 사회적자본지원센터, 인권센터, 환경교육센터, NGO지원센터 등은 일방적으로 폐쇄되었다. 심지어 주민참여예산제의 핵심 프로그램인 '자치구 사업' 예산마저 전면 삭감하여 주민참여예산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을 위한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음을 의미하며, 건강한 지역사회 건설 노력에 역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상공인’과 ‘과학도시’ 예산의 씁쓸한 현실
이장우 시장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인 등 사회적 약자 지원 강화를 재정 운영 방향으로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예산 편성은 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 관련 예산은 2023년 527억 원에서 2024년 291억 원으로 236억 원이나 감액 편성되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및 운영 예산 역시 2022년 1,397억 원에서 2023년 58억 원, 2024년 15억 원으로 대폭 삭감되었다. 이는 '온통대전'이 '대전사랑카드'로 되살아났다고 하지만,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과학도시 대전'의 위상 또한 예산에서는 빛을 잃고 있다. 대덕특구는 2021년 기준으로 2,461개의 국책 및 민간 연구소와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21.4조 원의 매출과 86,000명의 고용 인원을 자랑하는 대전 경제의 중추이다. 하지만 대전시의 과학기술 분야 예산은 2022년 허태정 시장 재임 시 806억 원이었던 것이 이장우 시장 취임 후 2023년 646억 원으로 159억 원 감액되었고, 2025년에는 다시 662억 원으로 58억 8천만 원 감액되었다. 이는 '과학도시'라는 대전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2024년 첫 예산 감액과 ‘지방채’로 채워진 살림
대전시의 2024년도 본 예산은 2023년보다 약 290억 원 가량 감액 편성되었다. 이러한 예산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는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과 ‘경제 파탄’이 지목된다. 대전시의 주요 재원인 국세분 지방교부세와 지방세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5년간 법인세 감소만 32조 원, 2024년에는 7조 원 감소가 예측된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로 내려와야 할 교부세가 6.8조 원 감소하면서, 대전시가 받아야 할 보통교부세는 1,600억 원이나 줄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지방세 감소 규모도 상당하다. 취득세 500억 원, 지방소비세 150억 원 등 총 2,250억 원의 감소가 발생했다.
이러한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대전시는 2,400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하여 적자 예산을 대체했다. 이처럼 교부세 및 지방세의 감소는 재정자주도와 재정자립도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전시의 누적 지방채는 2022년 1조 원을 넘어섰고, 2025년에는 1조 4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위기와 세입 환경 위축 속에서 이장우 시장의 공약 사업과 트램 등의 대규모 사업이 계속 추진된다면, 대전광역시의 누적 지방채 규모는 더욱 증가할 것이고, 이는 건전 재정 운용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여 현세대와 미래 세대에 커다란 재정적 부담을 전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장우 시장의 예산 편성은 '빛(지방채) 내서 적자 예산을 덮은 예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숫자가 말하는 대전의 미래
예산은 단순한 숫자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우선순위와 시민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허태정 시장의 예산이 '과학도시'와 '소상공인'이라는 대전의 특징을 살리려 노력했다면, 이장우 시장의 예산은 '색깔 지우기'와 '공약 우선'이라는 기조 아래 '빛'으로 도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물론 시장의 정책 방향이 바뀜에 따라 예산 편성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변화가 도시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고, 시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분야의 예산을 소홀히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부자 감세'와 '경제 파탄'이라는 거시적 환경 변화 속에서 지방 재정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기에 막대한 지방채를 발행하고 특정 사업에만 예산을 집중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무책임한 전가로 비판받을 수 있다.
이제 대전 시민들은 이장우 시장의 예산이 과연 대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냉철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예산이라는 숫자를 통해 드러나는 대전의 민낯을 직시하고, 우리가 바라는 도시의 미래를 향해 어떤 예산 편성이 이루어져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