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는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이지만 와이프가 배구선수(일신여중여상 배구팀) 출신이라 가끔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 배구경기를 중계하면 눈을 떼지 못한답니다. 특히 사촌동생이 한때 GS칼텍스 여자 배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했었기에 아주 가끔 경기장에도 찾아가고 스포츠 중계를 할 때면 찾아서 보곤 했답니다.
그래서 GS칼텍스 배구팀의 외국인 선수 ‘메레타 러츠’를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메레타 러츠 선수의 코로나19 관련 기고문을 접하곤 끝까지 읽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국인 배구선수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접하곤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언론에 기고한 글인데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메레타 러츠 선수는 지난해부터 GS칼텍스 배구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출신 배구선수 입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학교 질병 역학 논문으로 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은 질병 역학 분야 실력자이기도 합니다. 이 선수가 우리나라에 머물다 지난 3월 미국으로 돌아가 스포츠 기고 전문 매체인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에서 머물면서 느낀 것을 기고했는데,, 전문가의 식견으로 바라본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관찰기를 수준 높게 정리했습니다.
일독해볼 필요가 있는것 같아서, 기고문을 요약번역해서 게시해 놓습니다. 번역의 오류와 수준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지 마세요(ㅋㅋㅋ), 원문을 보시고 싶다면 아래에 링크해 두었으니 참조 바랍니다..
<GS칼텍스 여자배구팀의 선수인 ‘메레타 러츠’ 의 코로나19 관련 기고문>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11년 동안 살았는데, 지난 2006년 어느 날 아침 등교 길에 경비원들이 놀이터에서 죽은 새들을 삽으로 땅에 파묻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조류독감이 세계를 휩쓴 시기였으며, 아제르바이잔은 처음 경험한 조류독감에 대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으며, 당시 수 백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비쳤다는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당시의 상황을 조금씩 설명해 주셨고, 나도 이해를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런 기억이 계기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와서 휴스턴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생물학과 화학 과정을 수강했고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년에 돼지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이 당시에 다시 한번 내 인생에 있어서 전염병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배구경기에서 상대방 선수와 악수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2020년에 이르러서야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대한 위험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지만, 5~1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계 내에서도 질병 역학 분야는 비주류 학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질병역학 분야에 대해 매력을 느꼈고,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전염병 발병 소식을 들을 때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항상 사람들을 돕고 싶었기 때문에 질병 및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전염병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는 항상 꿈이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8년 스탠퍼드에서 인류학 학사와 질병 역학 석사를 전공했습니다. 전염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배구팀 활동을 통해 놀라운 학교생활과 함께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졸업 이후에도 질병 역학 분야의 일이 아닌 배구선수를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2018년 이탈리아 배구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지난해부터는 한국의 GS칼텍스 배구팀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학 때부터 저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전염병 발병 사실을 알려주는 전염병 매일 뉴스 레터 인 ProMED-mail에 가입해 있었습니다. 지난 12 월에 중국에서 보고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읽은 것을 기억합니다. 사실 당시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새로운 전염병 발생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큰 문제가 아닐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COVID-19의 한국에서의 첫 번째 사례는 1월 2일 보고되었습니다. 많은 경우가 중국 우한을 방문한 사람들로부터 나타났습니다. 2월 말에는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바쁜 연휴기간인 설날에 수천 명이 감염되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곧 중국이 겪은 것과 정확히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질병을 다루는 최일선에 있지는 않았지만, 질병 역학을 전공한 사람의 독특한 관점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바이러스가 발병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와 시민들의 반응이 상황에 따라 대단히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기고문을 쓰고 싶었던 이유기도 합니다.
나는 미국 텍사스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의 것들은 한국만큼 통제력이 있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는 발병 초기 단계에서 지침을 안내하는 경고 포스터가 도시 전역에 나 붙었고, 사람들은, 즉시 마스크를 쓰고 서로 간에 거리두기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민들은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생활 방역 지침을 따랐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였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방역당국의 말을 들었고, 질병 전문가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노인들을 존경받는 문화가 있는데, 더 나아가 권위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방역당국과 질병 전문가들의 말을 시민들이 존중하고 듣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19 위험에 대해 과학자들이 경고를 할 때도 모두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국은 MERS와 SARS를 다룬 후 전염병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방역당국에서는 검사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강조했으며, 또한 훌륭한 의료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한국이 유행병을 다루는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한국 국민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데 힘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흡족해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 말에 서울에서 휴스턴으로 돌아왔을 때 애틀랜타를 경유했는데, 공항에 검역 절차가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애틀랜타였다는 점에서 더욱더 놀라웠습니다. 나는 COVID-19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검역 절차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몇 시간 전 한국을 떠나기 전에 온도를 측정하고 검역을 했던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 안에서 좌석과 팔걸이를 물티슈로 닦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텍사스 악센트의 등치 큰 남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아가씨 뭐해요? 그건 미친 짓이야!"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이와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나는 COVID-19에 관해서는 모두 한국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일반적인 감기나 독감 수준의 것을 다루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심각하며 모든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인터뷰 원문 링크>
https://www.theplayerstribune.com/en-us/articles/merete-lutz-volleyball-covid-19-south-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