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합의’라는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
국민권익위는 오는 8월 27일부터 직무관련자와의 식사비 한도를 기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등이 예외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음식물의 가액 범위가 오는 8월 27일부터 기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는 말입니다.
※ 현재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등에게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3만 원 이하의 음식물에 대해서는 예외적 수수를 허용하고 있음
국민권익위원회는 음식물 가액 범위를 상향하는 배경으로, 지난 2003년 공무원 행동강령 제정 당시의 음식물 가액 기준인 3만 원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20여 년간 유지되어 오는 상황에서, 그간의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 등을 반영하지 못해 제도의 실효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고금리, 경기침체, 소비위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해 음식물 가액 기준을 상향하여 현실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각계의 다양한 호소도 계속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2023년 대통령실, “반대여론이 거세 당장 액수를 높이기 어렵다”
문제는 지난해 대통령실이 국민들의 거센 반대여론을 이유로 청탁금지법상 식사비 인상을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여론청취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인상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2023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실은 여론조사 등을 통해 김영란법 식사비 한도를 높이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은 결과, 반발이 거세 당장 액수를 높이기 어렵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합니다. 즉 대통령실 관계자는 “반대 여론이 높아 당장 식사비 한도를 높이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번 직무관련자와의 식사비 한도를 기존 3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던 것을 5만 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국민적 합의’라는 공론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뒷걸음치는 윤석열 정부의 반부패 정책, 식사비만 인상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2003년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했던 공무원들의 행위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공무원행동강령’, 이런 공무원행동강령은 2015년 청탁금지법, 2021년 이해충돌방지법 등의 제정과정에서 시대흐름에 맞도록 여러 차례 개정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공무원행동강령과 청탁금지법, 이해충돌방지법 등은 그 내용과 성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모두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예방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성격의 부패방지 제도입니다. 문제는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무원행동강령을 비롯 청탁금지법 등의 각종 부패방지 제도가 크게 뒷걸음치고 있어 우려가 됩니다.
이번처럼 식사비만 기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인상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공무원행동강령부터 개정했습니다. 그것도 당시에 대통령실 소속 직원들 가운데 사적이해관계의 신고와 고위공직자 민간분야 업무활동, 그리고 가족채용과 수의계약 등이 문제가 되자 관련규정이 포함된 공무원행동강령부터 적극적으로 개정한 것입니다.
지난해 8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종전 10만 원까지 허용되었던 농수산물 및 농수산가공품 등의 선물의 가액을 15만 원으로 상향 조정한 바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설, 추석 등 명절기간(명절 전 24일, 후 5일) 동안 상한액이 평소 2배까지 허용되기 때문에, 선물가액 30만 원까지 선물제공이 가능토록 변경되었습니다. 또한 바로 현금화가 가능해 금전과 유사하다고 판단해서, 청탁금지법상 선물제공 대상에서 제외했던 공연관람권 등의 온라인‧모바일 상품권도 선물가능 항목에 포함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 또한 물가상승 등의 경제현실에 부합하도록 변경이 필요했다는 설명과 함께 내수경제 활성화를 시행령 개정의 필요성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저들은 아직도 배가 고픈가 봅니다.
청탁금지법상 식사비 가액기준은 공직자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경우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에 대해 3만 원으로 제한했던 것입니다. 직무관련성이 없다면 식사비 제한금액과 상관없이 식사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직무관련성’이란, 간단히 말해 금품이나 이익을 주고받는 행위가 공직자 등의 직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면 금품이나 이익을 주고받는 행위가 부정청탁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청탁금지법상 식사비의 3만 원 한도를 만들고 제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금리, 경기침체, 소비위축 등을 핑계로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 등을 반영하지 못해 제도의 실효성 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에, 직무관련자와의 식사비 한도를 기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대폭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장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직자들과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을까요?
저들은 아직도 배가 고픈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