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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다반사

주윤발과 어릴적 영화관에 대한 추억

by goldcham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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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주윤발

 
영화배우 주윤발이 최근 코로나19 확진이 된 이후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기사를 보고, 필자가 깜짝 놀라서 여러 기사를 검색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잘 회복해서 외부활동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윤발이라는 이름은 오십중반을 넘어가는 필자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인물 중에 한 명이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윤발과 어릴 적 영화관에 대한 추억’이라는 주제로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필자가 태어난 곳은 과거 주소로 경북 안동군 임동면 마령리라는 곳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굽이굽이 산밖에 보이지 않았던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깡 시골 동네였답니다.
 
그 당시 집집마다 3대, 4대가 함께 사는 집들이 많았고, 형제들이 기본 오 남매 이상씩은 되었던 시절이었기에, 그 시골 국민(초등)학교에도 전교생이 1천 명을 훌쩍 넘겼답니다.
 
한반에 60명이 넘는 친구들이 콩나물시루 같이 수업을 들었던 기억, 봄이면 주변 가까운 절이나 소나무밭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 가을이면 가까운 산으로 가서 친구들과 함께 할당량만큼의 소나무 송충이를 잡았던 기억, 겨울이 되면 교실 난로 연료로 석탄을 사용했던 기억이 지금 블로그 글을 작성하면서도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필자가 처음으로 본 영화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지금의 영화관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본 게 아니라, 당시 전국 오지 학교를 순회하면서 교실 2~3개를 트여 학생들을 모아놓고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필자가 영화를 봤던 첫 기억이었습니다.
 
제목도 너무나 선명했던 ‘똘이장군’, ‘이순신 장군’ 등이었는데, 지금생각해보면 애국심 고취 및 반공영화가 대부분이었지만 어릴 적 영화관 구경을 전혀 해보지 못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습니다.
 

똘이장군 나무위키 참조

 

1987년 안동촌놈이 진짜 영화관을 찾아가다.

 
안동 시골 촌놈이 대학 때문에 대전에 와서 처음 봤던 영화가 ‘무릎과 무릎사이’외 2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너무나 강열해서 ‘무릎과 무릎사이’ 외 다른 영화는 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날 봤던 ‘무릎과 무릎사이’는 야동을 구경할 수 없었던 깡 시절 촌놈에게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영화를 ‘방화’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는데,, 영화 한 편을 돈 주고 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철 지난 영화 2,3편을 동시에 보는 ‘동시상영관’(대전의 무궁화 극장 등)을 친구들과 함께 찾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그런 동시상영관이 없어졌지만, 극장의 문을 두 손으로 밀며 들어서는 순간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콧속으로 먼저 급습하고 허리를 숙이고 더듬거리듯이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 앞을 보면 줄 쳐진 흐린 스크린과 고막을 칠듯한 스피커 소리로 나름 긴장감을 불러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문화적 충격 효과(?)로 인해 가끔 친구들과 함께 ‘동시상영관’ 영화관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22학년 때 오늘의 주인공 주윤발의 ‘영웅본색’을 만나게 됩니다.
 

주윤발 밀키스 광고장면

 

1988년 대전극장에서 주윤발의 ‘영웅본색’을 만나다.

 
필자가 주윤발의 ‘영웅본색’을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영웅본색은 1986년 홍콩에서 개봉한 영화로,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주연의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이후 우리나라 액션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주윤발 영화는 문화의 아이콘 중에 하나가 되었을 만큼, 당시 젊은층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한동안 필자에게 최고의 영화배우는 주윤발이었습니다.. 주윤발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야한영화’ 보다는 ‘액션영화’가 좋았으며, 그런 영화에 대한 취향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윤발, “돈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잠시 맡아서 보관할 뿐”

 
지난 2018년도에 내가 좋아했던 주윤발이 한국 돈 약 81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름 흐뭇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 주윤발은 “돈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잠시 맡아서 보관할 뿐”이라는 말을 해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기도 했었습니다.
 
주윤발은 대중교통을 자주이용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하철이나 버스 이용이 편리하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게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롱코트와 입가에 문 성냥개비, 그리고 쌍권총 액션은 주윤발의 상징이었습니다. 필자를 포함 누군가에게는 우상이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윤발도 이제는 세월을 거스르지는 못하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냥 좋아했던 한 팬의 입장에서, 부디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얼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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