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토) 코로나19 때문에 그동안 외출을 자제해 왔었는데,
오랜만에 공주 곰나루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에서 공주 곰나루 솔밭과 공주보를 답사하자는 공지문을 보고
저희 부부는 오랜만에 외출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마침 곰나루 탐방 안내를 금강요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김종술 기자가 함께한다는 소식에
아침 일직 일어나서 설래는 마음으로 달려 갔지요.
공주 웅비탑에 도착하니 금강의 요정으로 불리는 김종술 기자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으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하나둘 모두 모이기 시작했답니다.
곰나루 탐방은 참석자 인사를 시작으로 김종술 기자의 안내, 모래톱 풀뽑기, 보물찾기, 맛있는 점심, 공주보 탐방 등의 가족 모두가 참여가능한 힘들지 않은 일정이었답니다.
공주웅비탑에 주차 후 곰나루 솔밭으로 향하는 길에 김종술 기자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가르키며, 저곳이 과거에는 배밭이었는데 4대강 사업이후 방치되면서 고라니 등 수 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래톱 풀을 뽑기 위해 금강변으로 내려가던 중에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곰나루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김종술 기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으며, 전해오는 곰나루 전설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곰나루 전설>
옛날옛적에 지금의 곰나루 근처 연미산(燕尾山)에 큰 굴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암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잘 생긴 사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사내를 잡아다 굴속에 가두었다. 곰과 함께 굴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그 사내는 기회를 보다 도망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암곰이 사냥을 나갈때마다 바위로 굴 입구를 막아놓아 도망칠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 사내는 암곰과 사랑을 나누었고 둘째 새끼까지 낳게되자 그 암곰도 그 사내를 더이상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날 암곰은 돌로 굴 입구를 막지않은채 사냥을 나갔다. 자식이 둘이나 되는데 설마 도망가랴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사내는 강넘어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암곰은 두 새끼곰과 함께 강 가에서 돌아오라고 울부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내는 곰가족의 애원을 외면하고 강을 건넜으며, 그것을 보고 있던 엄마곰은 새끼곰들을 강물에 던지고 자신도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이후 이곳을 배들이 지날때마다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는 일이 일어나자, 이곳 주민들이 매년 수신제를 지내고 사당을 지어 죽은 곰가족을 위로 했다고 한다.
이후로 사람들은 사내가 건너온 나루를 고마나루 또는 곰나루[熊津]라고 불렀다 한다.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이곳 공주보는 2018년 3월부터 수문을 완전개방하면서
금강의 수변생태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풀들로 가득한 저곳은 공주보 조성전에는 모래톱이 있던 곳인데, 아직까지 모래톱이 완전하게 복원되고있지 못해서, 김종술 기자는 시간이 날때마다 이곳에 와서 풀들을 뽑고있다고 하네요.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께 과거 금강변에 있던 모래톱을 간접적으로 체험시켜 드리고자하는 목적에서 풀뽑기를 시작했다는 김종술 기자의 이야기에, 참석했던 20여명의 회원들도 한시간여에 걸쳐서 땀이 범벅이 되도록 열심히 풀을 뽑았답니다.
풀뽑기를 마무리한 후 점식식사 전에 솔밭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보물찾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어린시절 소풍에 대한 기억은 보물찾기를 못해 남들 다 받아본 연필한자루도 못받았던 기억밖에 없었기에, 두눈 부릎뜨고 보물찾기에 참여했답니다.
참석자들과 점심식사를 위해 찾아 간곳은 공주의 원도심인 감영길 앞에 있는
‘맛깔’이라는 두부전문집이었는데, 다음에 꼭 다시한번 들려야 겠다는 마음을 먹을만큼 맛과 분위기가 있는 식당이었답니다. 식사 후에는 감영길 바로 앞에 있는 이미정 갤러리 등 도시재생을 통해 과거 공주를 복원하려고 애쓰고 있는 감영길 앞 도로를 구경할 기회도 가졌답니다.
곰나루와 감영길 앞 공주를 처음 가보면서 느겼던 생각은 ‘자세히 보아야 예브다’는 싯구처럼, 대전에 30년을 살면서 공주를 다녀올 기회가 여럿 있었는데,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공주의 매력을 오늘 느낄 수 있었기에 이번 탐방프로그램은 그 의미가 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