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행정 및 법률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부작위(Omission, 不作爲) 용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라 어렵기도 하지만, 실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이기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1. 사전적 용어의 ‘부작위(不作爲)’란?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일을 말합니다. 즉 해야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는 소극행위(消極行爲)와 유사한 의미를 갖습니다.
반대말은 작위(作爲)로 사람이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나 적극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부작위(不作爲), 작위(作爲)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라기 보다는 주로 행정이나 법률과 관련해 쓰이고 있습니다.
부작위(不作爲)는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결과(위법행위)를 말합니다. 과실책임에서는 고의가 아닌 부주의로 인한 결과를 의미합니다.
2. 구체적인 부작위(不作爲)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구호의무 위반 : 재난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구호하지 않는 경우
<예시>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구호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2> 보호의무 위반 :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 경우
<예시>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하는 것은 보호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3> 감독의무 위반 : 감독을 받아야 할 사람을 감독하지 않는 경우
<예시> 사업주가 노동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여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는 것은 감독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4> 경고의무 위반 :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경고를 해야 할 경우 경고하지 않는 경우
<예시>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목격하고도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경고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부작위는 각종 의무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발생하기 때문에, 의무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성립합니다. 또한, 의무를 지키지 않은 행위가 피해를 발생시켰을 때만 위법행위로 인정됩니다.
3. 부작위(不作爲)의 책임
부작위(不作爲)의 책임이란? 의무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말합니다. 부작위는 적극적인 행위가 아닌 소극적인 행위이지만, 의무를 지키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에 위법행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부작위(不作爲)의 책임은 형법, 민법, 행정법 등 다양한 법률 분야에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형법에서는 부작위에 의한 범죄로 살인죄, 폭행죄, 상해죄, 재물손괴죄, 방화죄 등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민법에서는 부작위에 의한 채무불이행으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행정법에서는 행정청의 부작위에 대한 행정심판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부작위(不作爲)의 책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법적 의무 위반에 기한(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시한) 부작위 책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그 결과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의 안전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으므로, 자녀의 안전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2> 사회적 의무 위반에 기한 부작위 책임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그 결과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을 운전하여 사고를 낸 경우, 운전자는 사회적 의무 위반에 기한 부작위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부작위의 책임은 과실의 정도에 따라 과실상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과실상계란, 피해자와 가해자의 과실이 경합된 경우, 각자의 과실에 따라 책임을 나누는 것입니다. 부작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여 결과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청탁금지법 및 이해충돌방지법에서 말하는 부작위(不作爲)란?
청탁금지법 및 이해충돌방지법에서 말하는 부작위(不作爲)는, 공직자가 그 직무와 관련하여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금품, 향응, 향유재산 등의 부당한 이익을 수수하거나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청탁금지법 제3조).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의 이익과 공익 사이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이해충돌방지법 제4조).
청탁금지법 및 이해충돌방지법에서 말하는 부작위(不作爲)는, 공직자가 이러한 금지규정을 위반하여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부당한 이익을 수수하거나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청탁금지법을 위반하여 금품을 수수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부작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의 이익과 공익 사이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하여 직무 관련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직무와 관련된 사적 활동을 겸직하는 것도 부작위로 볼 수 있습니다.
청탁금지법 및 이해충돌방지법에서 부작위를 금지하는 것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고, 공직자의 공정성과 청렴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5.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사건(판례)
살인은 작위(作爲, 적극적인 행동)를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립 요건을 다음과 같이 설시(說示, 알기 쉽게 설명하여 보이다) 하였습니다.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야 한다.
- 피고인의 부작위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하게 할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 피고인의 부작위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판결은 피고인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피해자를 10시간 이상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적용되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피고인의 부작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할 개연성이 있었으며, 피고인의 부작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립 요건을 명확히 함으로써,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처벌을 강화하고,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6. 행정심판법에서 말하는 부작위(不作爲)
행정심판법에서 말하는 부작위는, 행정청이 의무적으로 처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처분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행정심판법은 행정청의 부작위도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행정심판법 제3조 제1항 제2호).
행정심판법 제1조(목적) 이 법은 행정심판 절차를 통하여 행정청의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處分)이나 부작위(不作爲)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을 구제하고, 아울러 행정의 적정한 운영을 꾀함을 목적으로 한다.
행정심판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처분”이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을 말한다.
2. “부작위”란 행정청이 당사자의 신청에 대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일정한 처분을 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데도 처분을 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행정청의 부작위가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 행정청에게 처분의무가 있어야 합니다.
- 행정청이 처분을 하여야 할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 행정청이 처분을 하지 않은 것이 위법·부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행정청이 국민의 청구에 따라 특정 행위를 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행정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행정청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정 처분을 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것도 행정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행정심판법에서 행정청의 부작위를 행정심판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시정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행정청이 국민의 청구에 따라 특정 행위를 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경우
<사례> 행정청의 부작위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행정허가의 부작위 : 건축허가, 영업허가, 신원조사허가, 출입국허가 등 행정허가를 신청한 경우, 행정청은 상당한 기간 내에 이를 허가하거나 거부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행정청이 이에 대한 결정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부작위가 성립합니다.
- 행정처분의 취소 또는 변경의 부작위 : 행정처분에 하자가 있는 경우, 당사자는 행정청에 그 취소 또는 변경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행정청은 신청을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처리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행정청이 이에 대한 결정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부작위가 성립합니다.
- 행정기관의 의무의 부작위 : 행정기관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는 공중위생과 환경보존을 위해 소음이나 진동, 악취 등을 규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행정기관이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부작위가 성립합니다
행정청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정 처분을 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경우
<사례> 이를 행하지 않는 경우를 구체적인 예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학교폭력 피해자 보호의 부작위 : 학교폭력 피해자는 학교폭력에 대한 보호조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행정청은 신청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피해자의 안전과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행정청이 피해자의 보호조치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경우에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부작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 환경오염 피해자 구제의 부작위 :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환경오염행위를 한 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환경오염의 피해를 방지하고 환경오염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환경오염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경우에는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부작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 사회적 약자 보호의 부작위 : 행정청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 교육사업, 고용사업 등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행정청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경우에는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부작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위와 같은 부작위가 발생한 경우, 국민은 행정심판을 통해 행정청의 의무이행을 구할 수 있습니다. 행정심판위원회는 행정청의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행정청에게 일정한 기간 내에 의무를 이행하라고 명할 수 있습니다.
행정청의 부작위는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지만, 모든 부작위가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청에게 처분의무가 없거나, 행정청이 처분을 하여야 할 법적 근거가 없거나, 행정청이 처분을 하지 않은 것이 위법·부당한 것으로 추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