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버지는 홀로 고향 집을 지키셨습니다.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기둥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지신 지 불과 20일 만에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도 황망한 이별 앞에 저는 지금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빈자리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 기억 속 아버지는 안동 선비 특유의 고지식함과 엄격함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의 공기는 늘 아버지의 무뚝뚝함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 서슬 퍼런 엄격함이 싫어, 철없던 저는 "나는 커서 절대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며 속으로 원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의 마디마디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진심은 제가 알던 겉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군 복무 시절, 면회 온 아버지가 돌아서며 몰래 훔치시던 눈물을 보았을 때, 그리고 신혼 초 아내를 도와 주방에 서 있는 제게 "설거지는 네가 해라"라며 며느리의 고단함을 먼저 살피시던 그 투박한 배려를 보았을 때, 저는 비로소 아버지의 ‘단단한 껍데기’ 안에 숨겨진 ‘말랑한 속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당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평생 커다란 산처럼 든든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는 왜 이리도 작고 수척해 보이시는지요.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저는 겨우 철이 드나 봅니다. 아버지가 고집스럽게 견뎌온 그 모진 세월이 사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묵직한 헌신이었음을 이제야 눈물로 깨닫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니 걱정, 자식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 무거운 삶의 짐은 이제 저희에게 맡겨두시고,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시길 빕니다.
못다 한 말이 너무도 많지만, 가슴 깊이 눌러 담아 이 한마디를 올립니다. “아버지,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