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제자: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주제: 내란사태 이후의 시민정치, 누구와 어떻게 할까?
1. 혼탁한 정치 언어와 시민 정체성의 위기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 언어의 혼탁화로 시민 정체성이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과거 80년대 '애국시민', 90년대 '민주시민', 촛불집회 '촛불시민' 등 비교적 명확했던 시민의 정의가, 이제는 진영을 넘나드는 '독재 vs 민주주의' 프레임의 역전 사용 등으로 인해 모호해졌습니다. 이러한 언어 혼탁은 시민들에게 혼란과 냉소를 가져오며, 정치적 열정을 식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강의자는 "우리는 동료를 잃은 것이 아니라, 혼탁한 언어 속에서 동료를 알아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하며, 정체성을 고정하려 하기보다 소통의 절차와 방식에 주목할 것을 제안합니다.
2. 조직화의 상호 전유와 극우·보수 진영의 조직화 심화
과거 민주화 운동의 방식이었던 집회 운영 기술, 조직 연계, 참여 전술(서명, 조례 폐지 운동 등)이 현재 보수 및 극우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극우 세력은 '자유마을'과 같은 전국적 조직, 온라인 네트워크, 문화 활동 등을 통해 과거와 달리 높은 조직 역량을 보이며, 선거 조직 투입까지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조직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이러한 조직화 심화는 내란사태의 불발 쿠데타 시도와 맞물려 양 진영의 갈등을 극렬화시키고 공론의 협력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3. 소통의 재정의와 청년 대표성의 결핍
강의자는 한국 사회에서 지시·명령과 혼재되어 일방적 전달로 인식되는 '소통'을 평등한 말하기와 행위의 기술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동료 시민을 다시 만나는 방법론적 토대가 됩니다.
한편, 2030대 보수화 논쟁은 가짜뉴스나 경제적 어려움 같은 표면적 원인 외에도,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높아 청년 정치 대표성이 구조적으로 결핍된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청년들이 정책을 '자기 것'이라 느끼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청년을 계몽의 대상이 아닌 상호 평등성과 연대의 기반에서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 공론장의 혐오 배제와 '용서'의 정치
정치적 의견과 혐오·적대의 경계가 흐려진 상황에서, 공론장은 감내 가능한 의견과 감내 불가능한 혐오·적대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과 배제 원칙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 기준은 개인의 불편을 넘어 공동체의 민주적 운영에 대한 위협 여부와 폭력성, 혐오 표현의 존재 등 공동체적 기준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강연자는 정치적 공존을 위해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처벌 일변도로 다루는 문화를 넘어 '용서'의 순간을 제안합니다. 모든 잘못을 공적 영역에서 처벌한다면 연대가 어려워지므로, 폭력이나 혐오와 같은 배제되어야 할 영역과 실수에 대한 용서가 필요한 순간을 구분하는 운영 원리가 필요합니다.
5. 재정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접점
재정은 자원분배, 경제 안정화, 소득재분배/복지의 기능을 가지는 시민의 공유 자원입니다. 그러나 현재 재정은 소수 정치인·관료에 의해 독점되고, 참여예산제는 주민숙원사업 대체 수준으로 축소되어 본래 취지(전체 재정 검증, 시민 결정권)에서 후퇴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생계에 기여하는, '밥을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재정·자원의 시민 결정권과 경제활동의 사회적 인정이 핵심입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논의 사례처럼, 현금 보완과 함께 농민·어민의 경제적 주체성을 인정하는 접근이 중요합니다.
6. 책임 민주주의와 정치의 회복
형식적 다수결을 넘어 실행-평가-재판단의 순환을 통해 공동의 책임을 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정족수를 채우는 형식적 의결만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을 지양하고, 실제 집행 결과를 놓고 의미를 논하며 책임을 분담해야 합니다.
나아가, 정치가 법원 중심 보도와 행정의 '규정 없음' 관행에 경직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만남과 서사를 구성하는 창의적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치는 법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라는 발언처럼, 규정을 넘어선 혁신적 연결과 시민 결정권 확대를 촉구하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