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언론을 비롯한 각계에서는 전(前)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선언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필자 또한 계엄 이후 4개월여간 이어진 혼돈스러운 상황을 겪으며, 이번 계엄 조치가 매우 부당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정치, 경제, 외교 등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이 심대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 국민, 유권자들의 책임에 대해 충분히 논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 유권자들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행위는 단순히 한 개인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이었으며,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한과 책임의 의미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한은 곧 책임과 연결된다. 이는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에게 부여한 권한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하며, 그 선택의 결과는 곧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 대표자를 선택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도 유권자들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 결과와 유권자의 책임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5년간 맡기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잇따른 논란과 정책 실패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예고 없이 단행된 비상계엄선언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태였다.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100일이 넘는 긴 심리 끝에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과연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당시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우리 국민, 유권자들의 책임은 간과해도 되는 것일까?
유권자의 책임 범위
유권자의 책임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책임이다.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공약과 과거 행적, 그리고 정책 비전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정당이나 지지층의 분위기에 휩쓸려 충분한 검증 없이 투표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선거 이후에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한 책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단순히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출된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독일의 사례와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1980년말 20세 청년이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 탈출 중 동독경비병에 의해 사살된 사건에서, 독일연방법원은 상부의 명령이라도 양심에 따라야 한다고 판결하며, 직접 사살한 경비병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당시 독일 사회 일각에서는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 군인들의 행위이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여론도 상당했다.
해당 사건과 관련하여 동독 최고 지도자들은 법정에 섰고, 에곤 크렌츠 등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특히, 독일헌법재판소는 명령에 따른 행위라 할지라도 중대한 인권 침해는 용납될 수 없다고 판결했으며, 이는 권한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이는 권한과 책임의 관점에서, 말단 사병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는 작금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작은 권한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권자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행사해야 할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향하여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충격적인 사태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한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유권자로서 우리의 역할을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관객을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치열하게 숙의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으며, 우리 모두가 '관객 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나 '참여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데 끊임없이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상.